맞교환은 답이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먼저 해보려 한다. 십여 년 전, 국제물류학 전공이었던 나는 군 제대 직후 대문호를 꿈꾸며 ‘취업 준비생들의 무덤’이라는 국어국문학과로 전과했다. 그 순간부터 서른에 이르기까지 내 인생의 돈벌이는 아르바이트 아니면 프리랜서였다. 글을 쓰든, 택배 상자를 나르든, 학원에서 강의를 하든, 나는 시간과 노동을 돈과 맞교환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 그러다 서른을 넘기며 나도 뒤늦게 직장인이 되었다.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법한 회사에 운 좋게도 글 쓰는 직무로 입사했다. 나름 산전수전 겪은 후라 신입사원의 포부나 회사에 대한 자긍심 따위는 없었지만 기분 좋은 안정감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나도 직장인이다. 꼬박꼬박 월급이 나오고 4대 보험을 회사에서 납부해준다. 정해진 시간에 퇴근은 못했지만, 적어도 정해진 시간이면 출근해야 할 곳은 있다. 그러나 그런 안정감도 오래 가진 못했다. 일을 할수록 회사가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프리랜서 때보다 수입은 많아졌지만 눈에 빤히 보이는 상한선이 있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나는 여전히 시간과 노동을 돈과 맞교환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체력도 시간도 명백히 제한이 있으니, 결국 ‘연봉 얼마짜리’ 인생을 향후 몇 년간 살아야 한다는 것도 명백했다. 집 대출금이며, 연로해져만 가는 부모님, 사랑하는 와이프와의 여유로운 생활, 그 무엇의 해답도 찾지 못한 채 나는 일에 끌려가고 있었다.
대부분의 고민들
물론 모두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닐 테다. 직장 생활이 적성에 맞을 수도 있고, 자신의 연봉에 만족할 수도 있다. 타고난 금수저라 돈 걱정이 없을 수도 있고, 이미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시간 대비 수입이 월등히 높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만약 지극히 개인적인 내 이야기가 남 일 같지 않다면, 우리에게는 물을 길어 나르는 물통이 아니라 물을 끌어오는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맞다, 그 유명한 버크 헤지스의 저서 『파이프라인 우화』에 나오는 그 파이프라인말이다. 파이프라인 우화에는 물을 길어 날라 돈을 버는 브루노와 파블로가 등장한다. 근면성실한 브루노는 한 통이라도 물을 더 나르려는 인물이다. 반면에 파블로는 할 수 있는 만큼 물통으로 물을 길어 나른 뒤, 남는 시간을 이용해 물을 끌어올 수 있는 파이프라인을 만들기 시작한다. 당연히 아무 효과도 볼 수 없었던 초반에 파블로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파이프라인 맨’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 했다. 이쯤에서 눈치챘겠지만, 결과적으로 몇 년 뒤 파이프라인을 완성한 파블로는 직접 물통을 나르지 않고도 돈을 버는 부자가 된다. 브루노가 시간과 노동을 돈과 맞교환하는 데에만 집중한 인물이라면, 파블로는 시간과 노동을 쏟지 않아도 돈이 들어오는 시스템을 구축한 인물이다. 특히 최근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경제, 산업에 타격을 입으며 ‘돈을 끌어오는 시스템’의 중요성이 더욱 대두되고 있다. 나는 운 좋게도 급여 삭감 없이 몇 주째 재택근무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급여가 줄고, 강제로 무급 휴가를 받아야 하고, 임원진이 사임하는 회사가 뉴스에 보도되고 있다. 우리 집 앞의 번화가에는 40%에 가까운 음식점들이 휴업 중이다. 정직하게 물통에 물을 길어 나르며 살아온 이들이 대체 무슨 잘못으로 물통을 빼앗긴단 말인가. 애초에 코로나 19 따위가 창궐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시스템의 요건
시스템이란 일단 한 번 구축해두면 별도의 시간이나 노동을 들이지 않아도 작동하여 돈을 끌어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건물주가 되어 월세를 받는 것, 유명한 저자가 되어 책의 인세를 받는 것, 유튜버나 크리에이터가 되어 작업물에 대한 조회수를 돈으로 환전하는 것 모두 다양한 방식의 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시스템은 아무나 구축할 수가 없다. 처음부터 어마어마한 자본금을 지니고 있거나, 특정 분야에서 능력이 뛰어나거나, 트렌드를 읽어내는 눈이 있어야 한다.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것이 무점포 창업이나 온라인 비즈니스 등 초기 자본금이 적은 사업이다. 그 또한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으나 진입장벽이 낮을수록 경쟁은 치열해지기 마련이다. 특히나 본업을 대책 없이 관두고 뛰어든 사람일수록 쉽게 포기하게 된다. 파이프라인 우화의 파블로도 몇 년간 비아냥의 대상이었다. 그런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시스템에 대한 확신 덕분이기도 했지만, 그 와중에도 물통에 물을 길어 날랐기 때문이다. 파이프라인이 완성되기 전까지 함부로 물통을 내던지지 않는 노련함도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네트워크 비즈니스는 꽤 현실적이고 훌륭한 파이프라인이다. 진득하게 신뢰와 인맥과 비즈니스를 쌓아둔다면 요즘처럼 코로나 19로 일을 하기 곤란할 때에도 수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모두의 파이프라인에서 봇물 터지듯 물이 쏟아지기만 하는 것을 아닐 테지만 마치 연금처럼 노동 없이 물을 얻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심적인 위안과 경제적인 여유가 된다. 그러다 파이프라인이 물통의 수입을 넘는 시점이 오면 경제적 여유는 경제적 자유로 전환된다. 무려 17년 전에 버크 헤지스가 말했던 그 ‘경제적 자유’말이다.
우화의 결말을 우리의 현실로
땀 흘려 일한 만큼 돈을 버는 노동의 신성함을 폄훼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파이프라인을 구축하는 동안의 시간과 노동 또한 신성하고 의미 있다는 걸 강조하고 싶을 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로 시작해, 다시 개인적인 이야기로 마무리를 지으려 한다. 나는 잘 다니던 회사를 곧 그만둔다. 이미 사직서를 제출했고 남은 인수인계를 차근차근 밟고 있다. 혹시 내가 파이프라인을 구축한 것이냐고? 안타깝게도 아니다. 다만 파이프라인 구축을 더이상 미룰 수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고, 앞으로도 쉽지 않겠지만 확신을 잃지 않는다면 나만의 파이프라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이뤄온 것들의 과정을 너무 쉽게 잊는다. 취직을 하고, 승진을 하고, 때로는 비겁해지기도 하면서 갖은 고초와 고민을 해치며 돈을 벌어왔다. 이제 와 파이프라인을 구축해야 한다는 말이 막막하고 두렵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여태 우리가 해낸 과정을 떠올리면 못할 이유도 없다. 앞서 언급한 파이프라인 우화에서 물통만 나르던 브루노는 어떻게 됐을까? 친절하게도 파블로와 브루노는 함께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잘 먹고, 잘 산다. 그런데 나는 이 결말이 우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각자의 파이프라인을 구축할 때, 우화의 행복한 결말은 우리의 현실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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