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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의 맞춤법 공부

김연수 <청춘의 문장들> - 훗날에도 반가운 문장

by 김바트 2022.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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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동기들은 보통 대학 신입생 1년을 신나게 놀고서 이듬해 1월이나 2월에 입대했다. 그 시기에 육군으로 입대해야 전역 직후 칼복학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미리 정해진 미래는 사람을 이토록 계획적으로 만든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마시고 취하고 토하던 동기들이었는데, 2년 뒤의 복학을 위해 머리를 짧게 깎고서 하나둘 캠퍼스를 떠났다. 나는 동기들보다 3개월쯤 늦은 20094월에, 게다가 육군보다 복무 기간이 3개월 더 긴 공군으로 입대했다. 20115월에서야 전역할 수 있었는데 당연히 칼복학은 불가능했다. 붕 떠버린 1년 동안 김해 본가에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며 지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이십 대의 날들 중에서 그때가 가장 한가하고 포근한 시절이었다. 먹이고 재우고 치워주는 부모님의 보살핌을 누리며, 적당히 용돈벌이나 하고, 거의 매일 애인을 만나던 날들. 2012년에 복학을 하긴 했는데 어쩐지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았다. 12학번 신입생 덕에 캠퍼스의 활기는 가득했지만 나를 둘러싼 분위기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동기들의 눈빛과 분위기도 사뭇 진지해졌다. 여자 동기들은 이미 졸업반이라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고, 남자 동기들은 군대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꽤 의젓한 얼굴이었다. 나는 전공에 흥미도 생기지 않았고 잘 해낼 자신도 없었다. 나만 성장하지 못한 채 섞여 있는 기분이 들었다. 경영통계 강의를 듣고 나오자마자 학과 사무실에 찾아가 일반 휴학을 신청했다. 복학한 지 겨우 2주 만이었다. 그리고 1년 뒤 나는 국어국문학과로 전공을 바꿔 복학했다. 국문과 학생이 된 후 누군가 내게 전공을 물었을 때 국어국문학과라고 대답하는 일은 늘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당당하고 상대방은 흠칫 안쓰러움을 내비친다. 짧은 순간 서로의 사이에 어떤 그림자가 슥 지나간 느낌이다. 우리는 뭔가를 본 것 같긴 한데 아마 아무것도 아닐 거야.’라는 식으로 서로의 태도를 못 본 체했다. 그 불균형과 비대칭의 긴장감이 여태 계속될 줄 그땐 몰랐다. 지금도 어디 가서 작가입니다, 시와 에세이를 씁니다, 라고 말하면 비슷한 장면이 연출된다. 그나마 작가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더해지면 조금 덜 쓸쓸하긴 하지만. 아무튼 나는 먹고살 길이 막막했던 마지막 학기를 제외하곤 국어국문학과의 생활에 전반적으로 만족하며 지냈다. 참으로 다정하고도 마음이 넓은 동기와 후배들 덕에 (첫 학기를 제외하면 나보다 학번이 높은 선배는 거의 없었다) 이런저런 발표를 하고, 대학 문학상을 받고, 저 혼자 고뇌에 찬 문청인 양 우수에 젖기도 했다. 그 시절엔 주로 슬픔과 우울과 절망을 글감으로 삼았다. 솔직히 그거 말곤 쓰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암울한 것들을 비집고 파고들어 작은 희망이나 위로를 찾아내려 애썼다. 더 나아가 문학이란 이런 것이라며 오만한 허세도 부렸다. 그러다 내 삶을 실제보다 극적이고 비관적인 장르로 착각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절에 쓴 시들은 유난히 자폐적이고 과장되어 있다. 아마도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나는 학과에서 매해 진행하는 작가 초청회의 사회자를 맡았다. 그것도 3년을 내리. 장률 감독, 김연수 소설가, 강은교 시인을 차례로 뵀다. 개인적으로는 김연수 소설가의 강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다른 에세이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했는데, 김연수 소설가는 미래가 불안한 국문과 학생에게 자신을 믿어주고 응원하는 한 명, 단 한 명만 있어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라고 말해줬다. 달리기를 좋아한다는 정보와 달리 굉장히 유약하고 피곤해 보였던 그가 가장 힘주어 말한 문장이었다. 나는 그 문장을 이십 대 내내 품고 곱씹으며 버텼다. 나를 믿고 응원해주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짚어보면서. 김연수는 명실공히 소설가이지만 시로 등단했고 산문집도 꽤 많이 냈다. 장르를 불문하고 나는 그의 문장을 좋아한다. 그리 짧은 편이 아닌데도 읽는 맛이 있어 지루하지 않고, 시적인 표현이 많아 서정적이다. <사월의 미, 칠월의 솔>은 소설이지만 몇몇 문장만 골라내면 시의 구절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다. 산문집 중에선 <지지 않는다는 말><청춘의 문장들>을 좋아한다. 모두 김연수 소설가가 서른 중반부터 마흔 초반쯤에 펴낸 책들이다. 작년에 출간된 <시절일기>도 잘 읽었는데 개인적으론 예전의 산문이 더 좋다. 너무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문체, 박장대소까지는 아니지만 심심할 때쯤 실소를 터뜨리게 하는 농담, 그러다가도 가슴 한구석을 젖은 수건으로 틀어막는 듯 먹먹한 문장들, 그리고 무라카미 하루키와 김광석의 노래까지. <청춘의 문장들>은 지금도 가끔 꺼내 읽는다. 분홍색 형광펜으로 그어둔 문장들만 골라 읽기도 한다. 예컨대 이런 문장들.

 

그 며칠 뒤,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도 못했는데 사촌형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조카가 죽었다는 얘기였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나보다 훨씬 건강한 아이였는데……. 육군병원 뒤쪽 영안실 마당으로는 비스듬한 아침 햇살이 군데군데 꽂혀 있었다.’

우리가 잊고자 애쓰는 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 집의 식구들은 모두 스물넷에서 서른두 살 사이의 사람들이었다. 인생의 정거장 같은 나이, 늘 누군가를 새로 만나고 또 떠나보내는 데 익숙해져야 하는 나이, 옛 가족은 떠났으나 새 가족은 이루지 못하는 나이, 그 누구와도 가족처럼 지낼 수 있으나 다음날이면 남남처럼 헤어질 수 있는 나이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

그곳에 살면서 나는 집주인 딸의 선배 대접은 톡톡하게 받았지만, 젊은 시인으로서의 대접은 전혀 받지 못했다. 시인이란 건 주인집 딸의 선배만큼의 쓸모도 없었다. 하지만 그게 마음에 들었다. 아무런 쓸모도 없는 일이라는 게.’

 

내가 사회를 본 김연수 소설가의 작가 초청회는 2014117일이었다. 그땐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었다. 그리고 4년 뒤인 2018년 크리스마스에 애인과 YES24 중고서점을 뒤적이다가 <청춘의 문장들>을 다시 만났다. 가격은 3,780. 그때 산 책이 여태 내 방 책장에 꽂혀 있다. 책이 지나온 세월을 생각하면 나이 드는 일도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다시 <청춘의 문장들>을 읽는다. 서른 중반의 나보다 스물여섯이었던 내가 조금 더 청춘을 닮았을 텐데, 오히려 지금 그의 문장들이 더 와 닿는다. 김연수 소설가가 서른다섯에 낸 책이어서 그런 걸까. 스물여섯보단 서른둘이 서른다섯과 더 가까우니까. 아니면 멀어져가는 것일수록 더 그리운 탓일까. 스물여섯보단 서른둘이 청춘에서 더 멀어져가는 중일 테니까. 어느 쪽이든 다시 이 책을 읽을 수 있어 반갑고 좋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어떤 강박 증세처럼, 나도 어딘가의 누군가에게 반가운 문장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훗날에도 반가운 문장으로 기억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2020. 12. 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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