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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트의 맞춤법 공부

마루야마 겐지 <취미 있는 인생> - 목청껏 소리 내는 시간

by 김바트 2022.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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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문장은 나 같은 인간이 감당하기 버거울 만큼 단호하다. 그의 작품을 많이 읽어본 건 아니지만 개중에 가벼운 축에 속하는 산문집인 <취미 있는 인생>만 봐도 그렇다. 표지 뒷면 문장을 그대로 인용하자면 이 책은 마루야마 겐지의 문학을 물밑에서 지지해온 다양한 취미의 기록이다. 이것만 보면 꽤 소소하고 명랑한 내용일 것 같지만 의외로 비장하고 무거운 문장이 많다. , 영화, 음악, 오토바이와 차로 이어지는 그의 취미 역사를 읽다 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젓게 된다. 나쁜 뜻이 있는 건 아니다. 여지를 주지 않는 그의 단호한 태도가 어쩐지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게 할 뿐. 표지에서부터 취미가 없는 인생은 죽은 인생이라고 단언한다.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역사적인 전쟁 영화인 <지옥의 묵시>에 관해선 형편없었다. 이런 졸작을 그렇게까지 추켜세우는 평론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입장이라고는 하지만, 그렇게나 많았나 하고 감탄한다.라며 일갈한다. 음악 이야기를 하다가는 나는 비틀즈를 인정하지 않았다. 아니, 인정하고 싶지 않았. 어디에도 생생함이 없었다.’라고 말한다. 그는 아미 앞에서도 BTS 욕을 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뭣도 아닌 내가 그런 말을 했다면 예술 감각이 결여되고 대중문화에 대한 이해가 떨어진다는 비난을 피지 못했겠지만,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니 괜히 궁금해진다. 대체 이 인간은 어떤 인간이길래 이런 말을, 이렇게 단호하고 날카롭게 해대는 건. 마루야마 겐지는 1966년에 <여름의 흐름>이라는 작품으로 데뷔. 귀향 청년의 고독을 그린 <정오이다>를 발표한 1968년부터는 단과 선을 그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겨우 데뷔 2년 차인 신인 시절과감히 자기 노선을 정한 셈이다. 그 후 약 50여 년간 여러 소설문집을 펴냈는데 제목에서도 그의 성향이 엿보인다. <인생 따위 이나 먹어라>, <나는 길들지 않는다> 등등. 주체적인 삶이란 당연스스로 주인이 되는 삶이다. 마루야마 겐지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주체적인 삶, 자립을 추구한다. 데뷔 전 무역회사에서 근무했던 그작가가 된 후 작가라면 1인 자영업이나 농사, 창작 활동을 해야 . 회사는 당장 뛰쳐나와야 한다.’라고 말한다. 누군들 회사를 뛰쳐나오고 싶지 않겠습니까, 겐지 할아버지.

올해 만 78세라는 걸 감안하면 말도 안 되게 세련된 문장인데, 쩔 수 없이 시대착오적인 내용도 간간이 섞여 있다. 그런 건 적당걸러 읽는다. 마루야마 겐지라서가 아니라 원래 독서라는 게 비판적활동이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읽으면 읽을수록 절레절레 젓던 고개가 짐짓 끄덕여진다. 그의 생각에 설득당한 건 아니다. 뭐랄까, 이 인간, 아니지 이 분참 일관성 있으시다, 대쪽같네. 그런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남 눈치 보는 위선자의 문장은 아니다. 사상으로 보나 성향으로 보나 친하게 지내고 싶진 않지만 어쨌든 별로인 인간은 아니는 느낌. 걸 안도감이라고 해야 할지, 체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작가로서는 마루야마 겐지의 능력이라면 능력인 셈이다.처음부터 그를 잘 알아서 <취미 있는 인생>을 산 건 아니었다. 2년 전에 아내와 처제와 조카들과 함께 책방 <카프카의 밤>에 들렀다가, 처제가 선물해준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집에 들인 책이다. 선뜻 수용하기 버거운 마루야마 겐지의 태도 때문에 문장이 매력적인데도 숨에 읽지 못했다. 두고두고 여러 번 곱씹게 된다는 점에서, 이 또한 작가로서 그의 능력인가 싶다. 참고로 그는 <지옥의 묵시록>혹평하면서 두 번 봐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은 실패작이다.’라고 . 아마 작품성에 방점을 찍은 혹평이겠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 정말 실패작이라면 관객은 굳이 두 번 보지 않는다. 단박에 이해할 순 없지만 뭔가 자꾸만 당기는 구석이 있으니 두 번, 세 번 보게 되는 거다. 그런 점에서 마루야마 겐지의 <취미 있는 인생>도 내게 결코 실패작은 아니다. 너무너무 좋아서 주변에 추천할 정도는 아니어도, 작가로서 배울 점은 분명히 있는 책이다. 오늘 아침에도 <취미 있는 인생>을 펼쳐 음악 관련 에피소드를 었다. 어느 여름날, 산속에 사는 친구 집을 방문한 그는 주변 풍경과 집의 구조에 감탄하면서도 어쩐지 허전함을 느낀다. 이내 그 이유가 음악의 부재라는 걸 깨닫는다. 음악만 있으면 완벽해질 것이라는 믿음으로 집에서 앰프와 테이프덱 따위를 챙겨 다시 그 친구 집에 간다. 그는 친구와 함께 빼곡한 숲과 기자키 호수와 멀리 키타 알프스의 전경을 바라보, 앰프 음량을 거의 최대치로 올려 음악을 듣는다. 비로소 완벽한 공간이 완성된 것이다. 나는 일본에 가본 적없는데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풀고 약간의 전율이 느껴졌다. 아쉽게도 그 완벽한 공간은 오래 가지 못한다. 장시간의 높은 출력견디지 못한 스피커가 터져버린 탓이다. 여차여차 전문가용 피커를 빌리지만 다시 친구 집에서 완벽한 공간을 구현하기는 망설여진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인가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는 이런 고민에 빠진다.

 

‘물론 산간 지방이기 때문에 한적한 장소는 얼마든지 있다. 얼마든지 있지만, 전원이 없으면 스피커를 설치할 수 없다. 전원이 있는 곳에는 인가가 모여 있다. 인가가 있으면 불만이 생긴다.’

 

이 대목에서 나는 요즘의 내 목소리를 떠올렸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질 기미 없이 이어졌던 2020년과 2021년 내내, 속 시원히 목소리를 낼 이 마땅치 않았다. 이 시국에 노래연습장을 갈 수도 없고, 버스킹하기엔 실력이 부족하고, 애초에 버스킹도 금지된 마당이니. 마루마 겐지 식으로 말하자면 노래를 부를 장소는 얼마든지 있다. 마든지 있지만, 코로나19가 종식되지 않으면 목청껏 소리를 낼 수가 없는 것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친구 J의 산타페 노래방이다. J의 차를 고 인적이 드문 산이나 바다로 간다. 스마트폰의 노래방 어플로 주를 틀고,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른다. J의 산타페는 놀라울 만큼 방음이 잘 된다. 일종의 출장 노래방인 셈이다. J는 그걸 차라오케(+가라오케)’라고 부른다. 오늘도 금련산 드라이브 코스 한 편에 주차를 해두고 노래를 불렀다. , 속이 다 시원하다. 앞서 소개하던 에피소드 끄트머리에서 마루야마 겐지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한다. 키타 알프스를 마주한 댐 위에 몇백 개의 스피커를 줄지어 설치해 가능한 만큼 소리를 내던지고 싶다고. 과연 마이웨이 단호박 마루야마 겐지 선생다운 꿈이다. 그에 비하면 내 꿈은 아주 소박하다. 그저 지갑에 든 몇천 원으로 코인 노래연습장에서 목청껏 노래나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당연히 마스크는 쓰지 않아도 괜찮은 시대여야 한다. 그 좁고 갑갑한 공간에 제 발로 들어가서는 나 좀 꺼내달라는 듯 큰 목소리로 쩌렁쩌렁, 산에와 김현식과 김광석의 노래를 부르고 싶다. 그러다 목이 쉬면 랩을 시작하는 거다. 팔로알토와 다이나믹듀오와 이센스의 랩을 어버버 쫓아가며 숨을 헐떡이고 싶다. 과연 나다운 꿈인데, 참으로 소박한 꿈인데, 언제쯤 이뤄지려나. 원대하든 소박하든 꿈이란 지금 닿을 수 없다는 점에서 크기와 상관없이 모두 멀다. 온전히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기 힘들다는 점에서 목표와도 결이 다르다. 목표만 쫓는 사람은 낭만이 없고 꿈만 꾸는 사람은 가망이 없다. 먼 꿈보다 손에 닿는 목표가 절실한 요즘, 내게는 가끔 목청껏 소리 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이 노래든 외침이든 울음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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